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에이루트건축사사무소의 이창규 대표이다. 구가건축 조정구 소장과 함께 일하다가 고향에서 열정적으로 건축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부부 건축가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제주시 원도심을 기록하고, 온평리의 마을공간을 기록하는 등 제주건축의 기억을 지키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애착을 가진 땅을 콕 짚진 않았지만, 가파도에서 바라본 한라산의 주변을 이야기했다. 그가 소개한 책은 <건축가들의 20대>이다.
# 땅 – 제주만이 가진 실루엣
구름 뒤엔 뭐가 있을까. 피어오른 안개 뒤엔 어떤 모습이 숨겨 있을까.
아주 먼 옛날. 바다를 항해하던 이들은 한라산을 바라봐야 했다. 한라산은 바다 위를 이동하는 이들에겐 방향키였다. 우리 기억에 없는 예전엔, 맑은 날은 가시거리가 상상을 초월했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이들에게, 일본에서 중국으로 오가는 이들에게, 한반도 남쪽에 있는 이들에게 한라산은 아무래도 특별한 존재였다. 지금도 날씨가 좋을 땐 제주도에서 남해안의 섬이 곧잘 보인다. 거꾸로 남해안의 섬에서도 제주도가 훤히 보인다.
기록에 있는 항해 루트를 보면, 한반도 북부에서 지금의 일본(당시는 ‘왜’)으로 이어지는 교역로는 한반도의 서해안을 따라가다가 남해안을 끼고 쓰시마섬을 거쳐서 왜국으로 들어간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 그런 기록이 있다. 기원 전후의 낙랑시대 사람들은 제주도를 직접 들르지 않았지만 남해안을 끼면서 멀리 보이는 한라산을 지표로 삼았으리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한라산은 365일을 빠짐없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진 않는다. 숨기는 날이 많다. 구름에 의해 숨겨지기도, 안개에 가려 흐릿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윤곽만 희미하게 남곤 하는데, 그게 매혹적이다.
제주 풍광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루엣을 남긴다. 제주시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다른 건 보이지 않고, 오직 한라산을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인다. 이때 한라산은 독일 기자 지크프리트 겐테가 측정한 1950m의 한라산이 아니라, 수천미터의 웅장한 높이를 가진 모습이 된다. 동쪽으로 가면 또 달라진다. 수많은 오름의 능선을 뒤로 하고 한라산이 보인다. 북쪽에서 바라보던 한라산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남쪽은 더 다르다. 한라산의 정상은 남쪽으로 치우쳐 있다. 때문에 서귀포에서 보는 한라산은 매우 가깝다. 마치 뒷동산처럼 다가온다. 서귀포사람들은 그래서인지, 그들이 바라보는 한라산이 가장 멋지다고 부르짖는다.
남쪽에서도 서쪽, 즉 대정읍 지역은 또다른 매력을 준다. 제주의 가장 많은 산이 몰린 지역으로, 산을 넘고, 산을 또 넘는 그런 모습 가운데 한라산이 있다. 산방산, 송악산, 단산 등과 어울린 한라산의 모습이 있다. 그걸 이창규 건축가는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한라산만의 단독 능선이 아니라, 여러 산이 만들어내는 능선은 제주의 독특한 풍경 가운데 하나임을 일깨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그런 제주만의 실루엣을 향해 예의를 지키고 있는지 궁금하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땅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 건축행위를 할테이지만, 제주를 사랑한다면 좀 더 제주 땅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할 일이다. 간혹 배반하는 행위는 있다. 2000년 전부터 항해를 하던 이들은 한라산의 실루엣을 봐왔다.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난 지금 역시, 한라산은 누구나 봐야 하는 존재임을 다 안다. 만일 한라산을 가리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가 등장하면 어떨까. 북쪽에서 바라보던 한라산을 가로막는 뭔가가 나타나거나, 가파도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능선에 해를 끼치는 존재가 등장하면 어떤 기분일까. 우리가 제주도라는 땅에 예의를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대담] 건축가 이창규를 만나다
에이루트건축사사무소는 부부 건축가의 공간이다. 제주 사람과 서울 사람이 만나 새로운 제주 건축을 이야기하고 있다. 에이루트는 음악 코드인 ‘a root’에서 따왔다. ‘a root’는 음악에서 각 코드의 기본이 되는 근본음이다. 에이루트건축사사무소가 내건 이름은 바로 음악코드가 말하듯, 건축의 기본에 충실하려 한다. 건축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의지가 건축사사무소 이름에 가득 풍긴다. 사무소는 봄이면 벚꽃이 피고 흩날리는 전농로에 적을 두고 있으나, 고향으로 가서 활동할 계획도 잡고 있다.
- 책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건축가들의 20대>는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절판됐더라.
20대 때 읽은 책이다. 제주대 건축학과를 다닐 때 건축을 잘하고 싶었다. 건축을 너무 좋아하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는데, 잘하는 방법은 모르겠고, 건축책을 많이 보게 됐다. 이 책은 안도 다다오 연구실이 엮은 책인데 세계적인 거장들이 20대 때 어떤 태도를 가지고 건축을 했는지에 대한 짧은 강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건축을 대하는 태도나 공부방법, 어떻게 건축을 해나가야 하는지를 배웠다.
- 이 책을 읽기 전후에 뭐가 달라졌나.
그 전에는 맹목적인 디자인, 형태적인 디자인에 집중했다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건축가는 말과 건축이 일치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깨달았다. 건축의 태도를 이해하게 됐다.
- 책은 여행도 강조를 하던데.
건축과 학생시절 많이 가곤 한다. 그런데 여행보다는 첫 직장을 어디 들어갈지 집중했다. 책을 보면 도미니크 페로가 대학을 다닐 때부터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같이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면서, 다른 측면을 많이 배웠다고 나온다. 우리나라 건축가 중에서 말과 건축이 일치되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찾았고, 구가건축의 조정구 소장을 만나게 됐다. 조정구 소장이랑 1주일마다 골목 답사를 했다.
- 서울에서 활동할 때 이야기도 들어봤으면 한다.
장수마을 공모전에 참가했다. 비영리단체와 마을활동가들이 모여 마을을 어떻게 바꿀지 제안하는 스터디 모임을 4~5년 했다. 6년쯤 되자 장수마을이 재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지구단위 계획에 참여했다. 그 마을은 개인주택에 지원된 사례였다. 공공이 개인소유에 돈을 지원해서 건물을 짓지 않는데, 조정구 소장이랑 우리 팀은 한양도성도 있고 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을 한데 묶어 정비를 하자고 했다. 성곽 주변으로 지구단위계획을 세웠고, 장수마을을 시작으로 이화마을, 창신마을로 확산됐다.
- 지금 도시재생의 문제는 큰 덩어리 위주로만 하려는데 있다. 주민들이 필요로 한다면서 큰 센터를 만들고, 큰 주차장을 만든다. 실제로는 거기에 사는 주민들이 불편한 걸 고쳐줘야 하며, 그게 도시재생이다. 하지만 그런 걸 잘 하지 않더라.
장수마을을 하면서 5년동안 주말에 회의를 했다. 도시재생을 제대로 하려면 건축가가 차분하게 들여다보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상처난 걸 어떻게 하면 될지를 진단하는 게 필수이다. 그런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장수마을은 서울시에서 관심이 없었는데, 비영리 ‘장수마을연구모임’을 5년간 가지면서 리서치를 했다. 나중에 행정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구단위 용역까지 나오게 됐다.
- 제주시내 도시재생을 봐보자. 제주시 원도심은 건축가가 들어가서 활동하지 않고 있다. 또한 원도심 이외의 지역엔 부동산 업자들이 먼저 들어가서 개발을 하자며 요구를 하기도 한다. 주민들의 고통을 이해하기보다는 부동산 가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제주시 구도심은 천년이 넘는 곳이다. 서울 건축가들은 그걸 듣고 깜짝 놀란다. 하지만 그런 게 느껴지지 않는다. 기록이 없어서다. 서울은 몇 년에 걸쳐서 지점마다 풍광을 찍는 등 기록을 하고 있다. 기록화가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제주시 구도심이 어떤 도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도시계획가랑 전문가 집단이 나서서 해야 한다.
(에이루트건축사사무소엔 그들이 만든 제주시 원도심 지도가 있다. 이창규 대표는 그 지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에 관련 이야기를 했고, 지도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7월부터 작업을 해서 1차는 마무리됐다. 어디에 차를 세우고, 수목은 어디에 있는지 지도에 나온다. 이런 데이터가 있어야 도시에 어떤 게 중요한지를 말할 수 있다. 마을지도가 필요한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위성지도와는 다르다. 위성지도는 현황만 보여주지만 이 지도는 해석이 들어간다. 건축적 해석이다. 생활문화경관이라고 해서 빨래는 어디, 화분은 어디, 골목 풍경은 어떤지 등의 현황을 조사한다. 지도만으로는 의미가 없어서 사진 작업도 더하고 있다.
- 도시재생지원센터가 특별법으로 만들어졌는데, 현황 조사를 좀 더 빨리 했더라면 지금은 답이 나왔을텐데.
고씨주택은 살아남았다. 구도심을 보면 안팎거리 집이 있고, 일제 가옥도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 자산도 있다. 이런 것을 계속 살리면서 누적된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 사람들은 편리를 우선 따진다. 그 사이에 도시는 망가지고 있다. 193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의 기억을 도시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공간은 중첩되어야 하는데, 원도심에 갑자기 조선(목관아)이 등장하면서 균형이 깨졌다. 비록 일제강점기 때 공간이 있더라도 살릴 것은 살렸어야 했다.
(이창규 대표는 관덕정 서쪽의 지도를 가리키며) 여기는 1900년대 초반의 길이랑 같다. 차가 못 지나가더라도 골목 폭을 유지시키면서 건물을 고칠 수 있는 지구단위 계획 필요하다. 도시재생지원센터에 제안을 해서 골목을 상세하고 조사했고, 2년간 온평리에 공을 들여 제주마을보고서도 만들었다. 서울은 인문사회 부문은 교수들이 맡아서 하고, 나머지는 건축가들이 맡아서 진행한다. 기존에도 제주건축가회에서도 했는데, 우리는 실측도면을 더 정교하게 넣으려 했다. 도면만 봐도 옛 골목 정취를 알 수 있도록 했다. 건축적 내용도 있지만 기록에 중심을 둬서 수목조사도 했다. 단면도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이런 것도 중요하다. 이와같은 데이터가 있으면 연구자나 후배 건축가들이 연구를 할 때도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 제주시 원도심도 온평리 마을조사처럼 하면 좋겠다. 제주도 차원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위탁을 맡고, 센터에서 건축가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의미 있는 작업이다. 온평리 작업도 2년 넘게 걸렸는데, 이보다 저 좋은 보고서를 내려면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한다. 서울 관련 보고서는 인문사회 내용을 담고, 실측 보고, 사계절 찍은 골목, 지적도, 섹터를 나눠서 다 조사를 했다. 골목은 넘버링을 해서 풍경을 담았다. 한옥의 개별 지붕도 다 그렸다. 구가건축 조정구 소장이 작업을 했다. 작업량은 어머어마하다. 제주에 기반을 둔 관심있는 건축가들이 하면 좋겠다. 비용만 있다면 더 좋아질 것이다.
- 제주도가 중심이 되고, 도시재생지원센터가 활동하는 건축가를 도와주는 기능을 해서 그런 자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깊이 있는 연구를 해서 좋은 자료를 남기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일반 시민들도 애정을 가지고, 도심을 지키려 하지 않을까. 기억은 공유하는 것이다. 정기용 선생이 어느 현상설계 때 썼던 문구가 기억난다. ‘할아버지가 걷던 길을 아버지가 걷고, 그 길을 손자가 공유할 수 있는 풍경이 굉장히 좋은 도시, 마을이 아니겠느냐’는 문구이다. 그 말이 와닿는다. 건물과 풍경은 좀 바뀔 수 있지만 길을 남긴다면 기억은 계속 이어갈 수 있다.
- 원래 이런 쪽에 관심을 뒀나?
제주도 건축가들은 대학교 때부터 지역성을 고민하고, 민가건축을 본다. 조정구 소장을 만나면서 장수마을을 보고, 서울의 삶을 건축적으로 기록했다. 그러다 보니 제주도에서도 그런 조사를 해보고 싶었다. 제주 와서 처음한 작업은 ‘제주 어머니집’이다. 제주 출신이어서 가장 제주적인 집을 설계해보고 싶었고, 그게 민가였다. 제주집은 누구나 다 아는 낮은 집이다. 민가를 보면 어두움이 있다. 예전 할머니집을 가면 기분 좋은 기억이 있다. ‘기분 좋은 어둠’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제주 어머니집’에 그런 표현을 했다. 2014년 당시만 하더라도 제주건축은 풍경을 독점하고 건물을 도로보다 높게 짓고 있었다. 제주 광풍일 때였지만 할머니집을 모티브로 ‘제주 어머니집’을 지었다.
- 그렇다면 제주의 지역성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누구나 보는 안거리 밖거리, 낮은 제주집. 그걸 현대적으로 진화시켜서 만들어낸 좋은 주거가 있느냐, 좋은 건물이 있느냐고 했을 때는 많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다 아는 보편적인 제주의 건축적 어휘를 현대에 맞게 진화시켜야 한다.
- ‘제주 어머니집’이 제주성을 담은 건축인가.
그렇게 생각한다.
- 제주 사람들은 그런 공간에 살다 보니, 그런 공간을 싫어한다. 옛날 거라고 해서 다들 없앤다.
제주적 보편성은 우리 어릴 때나 부모님 세대는 당연했다. 당시엔 못살던 시대였다. 제주사람들은 그래서 그런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건축주들을 만나면 현대적으로 지어달라 한다. 그렇더라도 지역적 삶이 담긴 공간을 반영하려고 한다.
- 모던하게 하더라도 특정 공간에 지역성을 반영시켰다는 것인지.
사례로 영평동 주택이 있다. 평면은 모던하지만 그 속에 정서나 재료, 올레 진입 공간의 느낌. 마당과 상방의 관계를 제주적으로 풀이했다.
정기용 선생이 영향을 많이 줬다. 정기용 선생은 문제도 이 땅에 있고, 해법도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에게 있다고 했다. 그게 제 가슴에 박혔다. 우린 서구적인 서양건축을 많이 보고 공부하지만 거기서 해법을 찾을 게 아니라, 우리 동네의 건축적 어휘를 풀어가야 한다. 때문에 좀 투박하지만 우리만의 작업을 하려고 하고 있다.
- 제주에서 콕 집어서 좋아하는 땅이나, 그런 곳이 있나.
특정하게 좋아하는 땅은 없다. 제주도 원형이 잘 남아있는 마을의 올레가 좋을 뿐이다. 그런 다짐을 한 계기가 있다. 송악산에서 보면 한라산 경관이 보인다. 가파도에서 배를 타면 한라산에서 송악산까지의 실루엣이 다 보인다. 제주도는 특정한 땅만 중요한 게 아니라, 섬 자체가 중요하다. 그래서 제주의 땅 하나하나를 잘 매만져줘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제주출신 건축가들은 제주에 관심이 많고. 제주 민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저도 그 중 한명이다. 특히 지나가다가 안 좋은 건물이 생기면 마음 아프다.
- 어떤 게 마음에 거슬리나.
조금만 신경을 쓰면 동네에 어울리는 건축이 될 수 있다. 혼자만 유별난, 이상하게 짓기도 한다. 튀려고 한다. 재료도 눈에 띄려 하고, 오브제처럼 보이려 한다. 어떤 건 균형에 맞지 않다. 동네와도 어울리지 않는데, 그런 걸 볼 때 안타깝다.
- 주변 풍경과 어울려야 하는데 혼자만 풍경을 즐기고, 혼자만 잘나는 그런 건축물이 있긴 하다. 제주도라는 땅은 왜 특별하게 가치 있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화가 돼야 할까.
제주도가 특별한 것은 섬이어서 그렇다.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제주도 건축이 육지와 다르다.
앞으로 제주건축이 어떻게 될까? 어려운 문제이다. 예전 제주집은 풍광을 위주로 하지 않았다. 요즘은 풍광을 많이 보고 싶어한다. 경관을 독점하려는 것이다. 그게 잘못됐다고 보지 않는다. 자연스런 현상이다. 제주를 해석하거나 제주에 내려와서 사는 분들의 다양한 욕구와 삶이 있기 때문에 그건 어쩔 수 없다. 그 안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어떻게 제주지역 풍토에 어울리게 할 것이냐에 있다. 그런 것에 충실한다면 제주건축이 좋아지지 않을까.
- 제주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의 역할은 뭐라고 보나.
역할은 건축가마다 다르다. 저는 연구를 기반으로 한국적 공간을 만들고 싶고, 이런 것들이 작게는 개별 건축주, 동네에 도움이 되는 건축이 되게 하고, 넓게는 공공영역으로 들어가서 해보고 싶다.
제주를 해석해서 건축에 반영할 수 있다. 육지 건축주들이 제주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미감은 제주사람과 다르다. 서울의 한옥 소유주들은 모던하게 현대건물로 짓기를 바란다. 그들은 못 살던 때 비새고 춥고 더운 기억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한옥에 살지 않던 이들은 한옥을 재해석하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제주도도 그런 경우이다. 돌집은 못살았고, 힘들었던 기억이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은 아름다움보다는 불편함을 토로한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면서 아름다움을 가져갈 수 있다면 제주건축이 진화하고, 제주민가가 진화하고, 제주돌집이 진화하는 방향성이 될테다.
<건축가들의 20대>, 도쿄대 공학부 건축학과 안도 다다오 연구실 엮음
렌조 피아노. 장 누벨, 리카르도 레고레타, 프랭크 게리, 이오 밍 페이, 도미니크 페로. 건축을 아는 이들에겐 이름만으로도 거장이다. 6명 가운데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이들이 4명이나 된다. 책을 엮은 안도 다다오도 프리츠커상을 받았으니, 이 책이야말로 건축계 거장들의 진담과 농담이 잔뜩 담겼다고 보면 된다.
일본 도쿄대 건축학과 학생들이 6명의 건축 거장을 만난 시점은 1998년이다. 그 시점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IMF 구제금융의 소용돌이에 들어간 때여서, 일본 학생들이 새삼 부럽다. 지금은 물론 아니지만.
책을 펼치면 6명의 거장은 ‘짬’을 냈다고 한다.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거장들이 쉽게 짬을 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진 않지만, 안도 다다오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책은 대담으로 꾸며졌다. 안도가 묻기도 하고, 일본의 다른 건축가가 나서서 대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거장들의 어린시절 이야기, 건축에 관심을 가진 이야기, 어떻게 건축 공부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렌조 피아노는 충격적인 건축물을 선사한 인물이다. 그의 나이 서른 세살에 리처드 로저스와 공동 작업으로 ‘퐁피두센터’ 설계공모에 당선됐다. 퐁피두센터는 외관이라는 외관은 모두 돌출된,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건축을 펼쳐 보였다. 그에겐 건축가는 설계만 잘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건축가는 단지 설계를 잘하거나 공간과 볼륨, 형태를 구상하는데 뛰어나다든가 과학자로서 특출하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사회의식, 사회적 동기 부여 역시 대단히 중요합니다. 건축은 빙산과 같으며, 눈에 보이는 부분은 아주 작습니다. 건축을 건축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물속에 잠겨 있는 부분입니다.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지리학, 기상학, 과학 등이 보이지 않게 물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그 감추어진 부분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건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건축을 하리라 마음 먹는 사람들에겐 지적 호기심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렌조 피아노가 일깨우고 있다.
프랭크 게리는 독특한 건축물로 유명하다. 그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은 스페인에 있는 빌바오라는 도시를 아예 바꿔버렸다. 게리는 도자기 수업이 자신을 바꾸어놓았다고 한다. 스스로를 ‘건축계의 아웃사이더’로 표현하는 그는 예술가와의 교류를 강조하고, ‘예술가와의 교류는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도쿄대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자신과 다른 감각을 가진 이들과의 교감은 놀라운 영감을 주는 원천임을 강조했다.
이오 밍 페이는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했다. 그는 특정한 장소의 중요성을 알 것을 주문했다. 건축물이 지어질 장소에 대한 뿌리를 알지 못할 경우엔 창조가 될 수 없고, 제대로 된 창조를 위해서라면 그 장소에 대한 뿌리를 찾으라고 말한다.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건 ‘비대면’이다. 지금 시점이라면 안도 다다오도 거장들과 학생들의 만남을 주선하지 못했을테지만, 비대면과 대면은 다르다. 아무리 좋은 건축잡지를 통해 거장들의 작품과 말을 들여다보더라도, 직접 거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안도는 그런 의미에서 거장을 초청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했다. 거기에 더 중요한 건 건축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태도이다. 단지 건축설계를 사업거리로 생각을 할지, 아니면 애정을 가지고 건축을 대할지에 있다. 안도는 책에서 다음처럼 얘기했다.
“건축 일을 하다 보면 현실의 잡무를 처리하는 데 쫓겨 이상을 잃고 무언가를 창조하는 즐거움이나 기력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는 오로지 건축을 깊이 좋아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점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출처 : 미디어제주(http://www.mediajeju.com)
원문보기 : http://www.media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3260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