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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곶 제주 sunhangot jeju 

천천히 변해가는 골목과 풍경

구도심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며 제주의 오래된 도시의 정체성과 방향을 고민하던 시 기, 한 부부가 찾아왔다. 당시 제주 구도심은 잘 기획된 숙소와 상점, 카페가 묶인 복합 건물이 성공적으로 들어온 후라 주변이 조금씩 들썩거리던 시기였다.

 

부부는 타지역 의 구도심이 어떻게 살아나고 어떻게 쇠락하는지 수없이 봐왔기에 실험적인 집을 짓 고 싶다고 하였다. 건축주의 독특한 결심에 ‘제주 구도심의 고유함’을 담고 ‘천천히 변 하는 골목’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였다. 그러려면 시간을 품어 주변 을 허름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였다. 그것이 이들이 생각한 운 영의 자연스러움과도 어우러지는 건물의 해법일 것 같았다. 큰 자본이 들어와 순식간 에 주변을 물들이기보다 생명력 있는 작은 가게들이 늘어 서서히 골목이 살아난다면 그것이 오래된 도심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처음 사이트를 방문한 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70년대 하얀 주택을 마주했다. 1층은 주인이 살며, 바깥채 한켠은 임대를 주고, 외부 계단으로 이어진 2층 공간도 임대의 흔적 이 남은 2층의 다가구 주택을 차근히 실측하며 조금씩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작은 땅에 건물로 가득찬 집은 제주의 겹집을 변형한 모습이었는데, 홑집과 달리 깊은 맛은 있 었지만 빛이 고르게 닿지 않는 단점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또한 집을 지을 당시의 스케일이 지금 우리의 삶과는 맞지 않아 답답하게 느껴졌다.

 

제주 구도심을 조사하며 느낀 문제점 중 하나는 녹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골목이 ‘건물과 바로 면한 도로’로 구성되어 있다. 부분, 부분 돌담길과 오래된 집들이 남아있지 만 60~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과 맞물려 대부분 허물어지고, 기능만 남은 삭막한 동네가 되어버렸다. 집은 새롭게 변화하더라도 올래가 남아있었다면 제주 구도심은 지금 더 풍요 로운 도시가 되지 않았을까? 땅의 가치가 높아져 1평이 아쉬운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까? 심상적 올래라는 개념은 여기에서 출발하였다. 자신의 땅을 이웃과 느슨하게 공유하여 여유 로운 동네를 만든다면 집과 도로로 가득 찬 구도심에도 다시금 올래의 형상을 만들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집을 새로 고치며 신경 쓴 부분 중 하 나는 70년대라는 시간과 그간 담겨진 기억들을 현재와 함께 녹여내는 것이었 다. 이번 작업에서는 과거의 흔적들과 새로운 솜씨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방법보다 그때의 것은 그것대로, 바뀌 는 것은 지금의 방식대로 대비의 자세 를 취하는 것을 택하였다. 공사가 진행 되는 동안 꾸준하게 견지한 것은 오래 된 것들도 날 것 그대로 거칠게 드러내 기보다 섬세하게 보듬어 마음 편한 공 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면의 굴뚝과 보일러실은 붉은 벽돌 타일로 마감해 하얀 건물, 녹색의 정원과 함께 골목의 활기를 불어넣고자 하였다.

 

완성된 순한곶 제주는 아이들을 위한 체험 미술관으로 운영되며 동네의 활기를 더하고 있다.

 

 

 

 

위치 : 제주시 삼도2동

​규모 : 지상 2층 / 92.69

용도 : 갤러리, 공방

구조 : 철근콘크리트, 조적조

​설계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이창규, 강정윤, 김현준)

감리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시공 : 루트 디자인

조경 : 화목해

​사진 : 이상훈

기간 : 20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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