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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리 솔비나무 집 solbi-namu jip

“반듯한 땅이 건물 짓기가 좋지요?” 건축 의뢰를 받을 때 종종 듣는 이야기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정연한 필지이기 때문에 땅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땅을 만지지 않아도 되니 시공 비용이나 난이도가 높지 않지만, 부정형 필지가 갖는 풍요로움, 지형적 특징을 반영하는 고유한 공간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보성리 솔비나무 집은 곶자왈 곁의 계획 필지에 자리한다. 건축주는 가족의 삶이 잘 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고, 제주에 내려와 주택을 경험해보니 유지관리와 사생활 보호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가족의 삶을 담기에 높이와 건폐율, 연면적 등에서 아쉬움을 가진 땅이라 서울 근교에 잘 조성된 전원에 지어진 주택과 비슷한 해법으로 접근할 수 있겠지만, 살아갈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담는 것 이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풍토를 반영해 정연한 땅에 풍요를 넣어보고자 하였다.

 

건폐율과 높이 제한이 큰 어려움이었다. 가족의 일상적 삶과 취미 공간을 넣으면 전원 생활의 장점인 야외공간이 작아지고, 자녀들의 소망인 다락을 만들기엔 8m라는 높이의 제한으로 각 층의 층고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역의 계획 필지에는 그에 맞는 지구단위 계획이 필요한데, 서울 근교의 계획을 이 땅에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우리는 실내 높이를 낮추기보다 땅보다 낮은 집을 만들기로 하였다. 제주 땅은 다공질이라 물빠짐이 워낙 좋기 때문에 건축주도 기능적인 문제만 없다면 괜찮다며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집은 ‘ㄷ’자 형태의 가운데 마당 집으로 길과 비슷한 높이의 대문간을 지나 세단 밑으로 내려오면 마당을 마주하게 된다. 대문 옆으로는 아빠의 취미실을 별채로 만들었고, 오소록한 마당에는 불을 떼는 공간을 두고 주방과 식당, 거실이 바로 마주하도록 계획하였다. 높은 담을 쌓을 수 없는 지역인데, 마당과 1층의 높이가 낮아지니 외부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문간을 두었기 때문에 내부는 투명해질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집 어디에서 든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정원은 나무에 관심이 많은 딸의 취향을 반영해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나무들과 화초류,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제주 곶자왈의 식생이 조화를 이룬다. 또한 제주에서 자라는 나무들을 주로 심어 지역적 특성을 살리고자 하였는데, 조경을 맡은 연수당에서 땅의 높이와 수종을 섬세하게 매만져 나올 수 있었다.

 

1층은 가족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계획하고 2층은 가족들의 침실이 자리한다. 문간채와 주방, 거실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안방은 자녀의 방보다 몇 단 더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복도를 오가며 정원을 자연스레 만날 수 있다. 이 복도에는 1층 바닥면적의 제한이 있어 올라온 세탁실을 잘 정돈해 배치하였는데 가족의 생활동선과 가까워 사용에 용이하다. 2층 욕조 공간 또한 곁으로 작은 틈새 마당을 두어 제주의 자연을 섬세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하였다. 동네 놀이터에 면한 계단실은 가족들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생활이 보호되면서도 자연 빛을 경험할 수 있도록 유리블록을 사용하였다.

 

이곳에 사는 가족의 삶의 특성상 1년에 몇 달은 집을 비우게 되는데 정갈한 건축주가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는 유지관리가 잘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제주는 풍토가 거칠어 재료를 잘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리 마을 안에 자리한 집이라도 몇 년 안에 금방 허름해지고 만다. 거친 풍토를 잘 이겨내는 것은 자연에서 온 재료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시간을 머금으며 멋지게 나이 드는 집을 만들고자 집의 안팎으로 최대한 자연재료를 쓰고자 하였다. 다공질의 제주석보다 조금 더 유리한 화강석을 그 비례를 조정해 사용하고, 잘 구운 벽돌을 쪼개서 계절과 빛에 따라 색과 질감이 다양하게 드러나게 계획하였다. 그리고 조경가가 추천한 거친 벽돌벽에 어울리는 수려한 나무를 집 전면에 심어 이 집의 이름을 솔비나무 집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솔비나무 집은 계획된 필지에 일반적인 2층 주택을 짓는 방식이 아니라 땅과 자연을 섬세하게 매만져 제주의 분위기를 잘 담는 집을 만들고자 한 작업이다. 그동안 자연과 가까운 건축을 하며 갖게 된 태도로 비슷한 땅이어도 다양한 삶의 방식을 품은 건물, 고유한 마당과 정원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위치 :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규모 : 지상 2층  / 194.90

용도 : 주택

구조 : 철근  콘크리트

​설계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이창규, 강정윤, 김현준)

​감리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이창규, 강정윤, 김현준)

시공 : 주식회사 이아컴퍼니

조경 : 연수당

구조 설계 : (주)드림구조 

전기, 기계 설계 : 한성이엔지

가구 : 나무젠

​사진 : AQUIFOTO 이재우

기간 : 202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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