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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근동 L 주택 hogeun-dong L residence 

건축주 부부는 제주에서 노후를 보낼 집을 짓는다고 하였다. 부부는 서울에서의 숨가쁜 생활을 정리하고 정원도 가꾸고, 오름도 오르며 건강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제주에 내려올 결심을 하였고, 자신에게 맞춤 옷 같은 집을 짓기 위해 다양한 건축 서적과 월간지 등을 보며 공부를 하는 중 이였다. 처음엔 제주에 집을 짓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 이미 완공이 된 전원 주택들을 보러 다녔으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직접 지어야겠다 결심을 했고, 커다란 땅을 온전히 관리하는 것은 오랜 시간 아파트에 살던 자신들에게는 조금 겁이 나는 일이라며, 제주 귤밭을 네모나게 나눠 작은 마을 같은 택지를 구입했다고 설명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오랫동안 꾸려온 중년 부부였기에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고, 원하는 것, 불필요한 것들을 쉬이 가려냈다. 여러 곳을 여행하며 머문 다양한 공간의 경험으로 설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 즐겁게 작업을 진행 할 수 있었다.

건축주가 구매한 땅은 북쪽으로는 한라산, 남쪽으로는 서귀포 바다가 멀리 보이는 한적한 땅이었다. 주변은 과수원이 대부분이었는데, 해당 대지도 3000여 평 되는 큰 귤밭을 12개의 필지로 나눈 듯 보였다. 이미 집 몇 채가 듬성듬성하게 들어서 있었는데, 대부분 분할된 택지 정 가운데 집을 배치하고, 담장을 둘러 마당을 조성한 방식이었다. 마당과 집은 외부에서 훤히 들여다 보였고 집마다 모두 커텐을 치고 마당을 즐기지 않는 듯했다. 200여 평의 땅을 사서 40평 안에서만 사는 느낌이랄까. 집들은 땅 위에 그냥 휑하게, 우두커니 그렇게 서 있었다.

 

당시 에이루트는 중정이라고 흔히 부르는 가운데 마당집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이였다. 비슷한 시기에 설계를 진행 중인 집들에서 각 필지에 어울리는 마당 집에 대해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었고, 호근동 또한 가운데 마당을 가지며 모든 실에서 마당을 접하는 집을 구상했다. 북촌 한옥마을의 도시형 한옥이 대지 30~60평 사이 필지의 중정 집의 전형이라면, 100평이 기본으로 넘어가는 제주의 대지에 가운데 마당집을 구성할 때는 어떤 형상이 되어야 할까. 우선 배치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중정집을 짓는다고 하면, 현관과 내부를 거친 후 들어가는 가운데 마당집을 구상한다. 그러나 우리의 가운데 마당은 들고 날 때 언제나 만나는, 대문을 열면 골목과 이어지는 길의 연장선이다. 또한 한국적 마당을 다른 나라의 마당과 다르게 활발하게 쓰이는 마당이라고 정의 할 때, 남은 부지를 그저 내벼려 두어 마당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쓰임을 갖는 내부 실과 접하는 마당 각각에 필요한 성격을 부여해주어야 한다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의 생활 방식을 고려 할 때, 주택은 점점 더 사적인 공간을 필요로 하고, 또 길과는 위압감이 들지 않아야 한다는 두 가지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건물 자체가 담장이 되는 방법을 선택하면, 많은 것들을 순리대로 풀 수 있는 것 같았다.

건물로 담을 만들어 대문간을 두니 골목에서 한번 멈춰 설 수 있는 근사한 대문과 처마가 생겨 비를 맞지 않고 현관까지 갈 수 있는 대우받는 공간이 생겼고, 자연스레 가운데 마당이 놓이게 되었다. 또 뒤쪽 땅의 형상을 그대로 살려 뒷마당을 구성하며, 각각의 실에서 필요로 하는 작은 마당을 갖는 마당집이 되어 굳이 남향 마당만을 고집 할 필요가 없어졌다. 더불어 대문과 현관이 분리되니 현관문을 투명한 유리문으로 설치하여 밝은 현관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배치가 풀리니 다른 평면들은 자연스레 부부의 삶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부부가 생활 할 안방과 독립한 자녀들이 놀러와 머물 수 있는 손님방을 1층에 만들고 2층에 서재 겸 다실을 두는 것이 큰 계획이었다. 특히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을 함께 두어 부부 둘만 있어도 적적하지 않은 공간을 만들고, 2층의 서재는 높은 마루와 그와 이어진 테라스를 만들어 2층 임에도 마치 1층 같이 느껴지는 공간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더불어 목구조가 가진 따뜻함에 한식창호를 더 하니, 익숙하고 마음 편한 집이 되었다.

조경은 기존에 있던 서쪽의 둔덕을 그대로 살릴 것을 제안하였다. 기존 땅이 가진 분위기가 새로 들어선 집에 안정과 무게를 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안방의 작은 마당은 돌담을 적절하게 올리고, 대나무와 남천 등으로 아늑한 작은 마당을 만들되, 골목의 풍경을 고려한 조경을 하길 권하였다. 대문 앞 화단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가운데 마당은 귤나무가 심어진 제주식의 마당을 제안하였는데, 건축주가 최종으로 결정한 것은 곶자왈과 같은 풍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건축주가 선택한 소철이 이국적인 풍경으로 느껴졌으나 시간이 지나 곶자왈 돌과 함께 하니 묘하게 제주의 분위기가 났다.

호근동 주택 프로젝트는 다양한 형상의 마당집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한 작업이다. 그와 더불어 건축가란 그저 대지 안에 건물을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고려하며, 책임을 가지고 섬세하게 매만져야 한다는 초심을 일깨워 준 프로젝트다.

 

 

 

 

위치 : 서귀포시 호근동

​규모 : 지상 2층 / 145.50

용도 : 단독주택

구조 : 철근콘크리트, 목구조

​설계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이창규, 강정윤)

감리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시공 : 테바건축

조경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건축주 직영

​사진 : 이상훈

기간 : 201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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