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의 아름다움, 베케 veke
도로변에 서 있는 무표정한 건물. 묵직한 벽을 돌아 그 하부를 지나면 커다랗고 어스름한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잠시 둘러보다 얼핏 보이는 열린 틈으로 걸음을 옮겨 바람을 느끼다보면 이내 짙은 회랑이 나오고, 그 길을 천천히 따라가면 다시 밝고 따스한 자연과 만난다. 지붕과 기단, 유리로 이루어진 단순한 공간 너머로 저마다의 모양과 색을 가진 나무들이 서 있고, 하늘거리는 꽃과 풀이 건물 주변으로 심겨져 그 주변을 흐릿하게 만든다.
<무덤덤함의 서정성>
두 번째 베케, 이곳은 마치 제주의 건축처럼 무덤덤하지만 서정적인 공간이다. 무심히 놓여진 세 개의 공간과 그를 연결하는 두 개의 회랑은 공간과 공간 사이의 관계, 열림과 닫힘의 비례, 빛과 그림자 등을 오랜 시간 고민하고 섬세히 매만져 나온 결과이다. 방문객들은 어디서든 거슬림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고 호흡하며 자신만의 순간을 저마다의 감정으로 오롯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기분 좋은 어두움>
기분 좋은 어두움은 이곳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주제이다. 햇살이 강렬한 제주는 옛부터 아늑한 집을 만들기 위해 내부를 어스름하게 만들곤 하였다. 이번 작업에서도 우리는 점점 깊어지는 배치, 낮고 긴 조형과 짙은 마감을 통해 밝고 시원하게 열린 외부와 대비된 안온한 공간을 만들어, 바깥의 중첩된 풍경과 빛을 마음 편히 감상 할 수 있게 하였다.
풍경 속에 겸손히 녹아들던 우리의 건축은 언젠가부터 자연을 극복하며 스스로 완결적이고자 하였고, 자연은 그를 빛내주는 배경, 꾸며주는 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곳에서 건축은 강한 개념으로 그 형상을 드러내지 않고, 단단한 돌과 부드러운 지형, 켜켜이 심은 나무들과 여린 화초들의 배경이 되고자 한다. 지워진 건축의 아름다움, 두 번째 베케는 이렇게 건축과 자연, 선명한 두 개체가 만나 경계를 흐리고,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공존의 공간이다.
위치 : 서귀포시 신효동
규모 : 지상 2층, 862.89㎡
용도 : 사무소, 카페
구조 : 철근 콘크리트
설계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이창규, 강정윤, 김현준
감리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이창규, 강정윤, 김현준
조경 : 더가든 김봉찬
기획 : 최정화, 김봉찬
구조 설계 : (주)드림구조 김윤범
전기, 기계 설계 : 한성이엔지
시공 : 더룩 종합건설 성창용
가구 : 나무놀이터, 선흘공방
사진 : 박영채
기간 : 2021~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