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케: 반응하는 건축
우리는 건축을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일보다, 주어진 조건을 읽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대지와 풍경, 사람과 프로그램, 빛과 바람, 시간과 식물의 성장 같은 서로 다른 조건들이 하나의 질서 안에서 관계 맺도록 조율하는 일. 베케는 이러한 태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작업이다.
설계는 평평한 주차장이었던 대지를 다시 읽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주변에 기대어 바라볼 풍경이 뚜렷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서향빛과 바람, 기존 수목과 작업장의 흔적은 이곳이 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는 대지 안에서 스스로 풍경을 만들어내는 장소를 상상했고, 굼부리 형태로 땅을 파내어 새로운 지형을 만들었다. 이 지형은 건축을 올려놓기 위한 바탕이 아니라, 건축과 정원, 사람의 움직임과 시선을 함께 조직하는 설계의 출발점이었다.
배치와 형상은 새롭게 형성된 지형과 주변 조건에 반응하며 점차 다듬어졌다. 카페와 사무실, 전시 공간 등 서로 다른 기능을 담은 건물들은 회랑으로 이어지고, 동선과 운영, 빛과 바람, 시선과 거리의 관계에 따라 분산되거나 모인다. 높이가 다른 건물과 정원을 가로지르는 회랑은 바닥과 천장의 연속된 기준면을 만들며, 여러 공간을 하나의 느슨한 질서 안에 묶는다. 건축은 하나의 강한 형상으로 앞서기보다, 관계를 조율하는 배경으로 물러나며 서서히 형태를 갖추었다.
공간은 빛과 그림자,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조직되었다. 도로변의 무표정한 벽을 돌아 건물 아래의 어스름한 공간을 지나고, 좁고 긴 회랑을 따라 걷다가 다시 밝은 정원과 만나는 흐름 속에서 몸은 빛의 깊이와 땅의 높이, 식물과의 거리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공간들은 완전히 나뉘거나 하나로 합쳐지지 않은 채 회랑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기척을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기분 좋은 어두움’과 ‘느슨한 공유’는 별도의 장치가 아니라 공간을 경험하는 감각으로 드러난다.
베케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결과가 아니라, 조건을 읽고 반응하며 필요한 환경을 새롭게 만들어간 판단들의 축적이다. 어떤 조건은 받아들이고, 어떤 조건은 조정하며, 또 어떤 조건은 생성하는 과정 속에서 건축과 정원은 함께 만들어졌다. 완공은 이 장소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식물이 자라며 건축의 일부를 가리고, 사람들의 사용이 새로운 동선과 장면을 더하면서 베케의 관계와 풍경은 지금도 계속 형성되고 있다.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신효동
규모 : 지상 2층, 862.89㎡
용도 : 사무소, 카페
구조 : 철근 콘크리트
설계 : 이창규, 강정윤, 김현준
감리 : 이창규, 강정윤, 김현준
조경 : 더가든 김봉찬
초기 기획 및 자문: 최정화
구조 설계 : (주)드림구조
전기, 기계 설계 : 한성이엔지
시공 : 더룩 종합건설
가구 : 나무놀이터, 선흘공방
사진 : 박영채, 신경남
영상 : 언디파인드
기간 : 2021~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