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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동 O 주택 youngpyeung-dong O residence 

“묵직하면서도 눈에 띄는 건물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동네에서 우리 집이 좋은 건축의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주 영평동 주택의 건축주가 요청한 사항이었다. 건축주는 미술에 조예가 깊은 작가 부부로 전면부에 지어질 건물의 조형이 특히 중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시기를 전, 후로 제주 시내에는 여기저기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는데, 땅의 특성을 온몸으로 드러낼 수 있는 외곽지역과 달리, 시내는 도시의 깔끔하고 새침한 느낌을 담는 건물들이 많은 편이었다. 제주에, 그리고 이주민이 아닌 제주의 원도민이 많이 거주하는 시내에 이 땅의 특성을 담는 상가 건물과 주택은 어떠해야 할까?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건축주의 집>

집을 설계하기 전 건축주 가족이 살고있는 집을 방문했다. 오래전 다른 건축가와 작업하여 직접 지은 집으로 현대적인 주택과 옛날 제주식 목구조가 섞여 있는 집이었다. 이 집을 지을 당시 건축주 부부는 오래된 것, 제주다운 것에 관심이 많아 집 일부도 제주 초가 형식으로 짓고, 작품들도 같은 분위기가 드러났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단순하고 정연한 것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번 집은 자신들의 예전 모습과 현재의 관심이 함께 들어있는 집이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하였다. 당시 에이루트도 비슷한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건축주 부부와 함께 공부하며 만들어가는 집은 어떤 집일지 스스로도 매우 궁금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다

대지는 마른 하천이 휘감아 나가는 땅으로 제주석으로 감싸진 축대가 마치 성곽 같았다. 삼거리 코너에 있는 땅이라 건물이 지어지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무는 장소였고, 대지 모양이 반듯하지 않아 건물을 앉히기 까다로운 편이었다. 뒤쪽은 좁고 깊숙한 골목을 두고 오래된 집들이 자리하여 예전 골목의 분위기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맞은편 복지회관도 그런 분위기에 한몫을 하고 있었다. 제주 도심지에도 이렇게 고즈넉한 곳이 있구나 생각했다.

 

 

<수평으로 펼쳐진 건물>

영평동은 제주 시내임에도 밀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건물과 과수원이 반반 자리했다고 할까. 어찌 보면 도시중심지에서 전원생활이 가능한 매력적인 동네였다. 이 지역에 수직으로 중첩되어 우뚝 선 조형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땅을 넓게 사용하면 좋을 듯했다. 다행히 건축주도 비슷한 생각을 하여 상가와 주택부를 나누어 땅에 펼쳐놓기 시작하였다. 유지, 관리라는 기능과 공사비 등을 고려할 때 한 동이 되는 것이 좋겠단 판단이 들어 주택과 상가를 붙이고, 전이 공간에 주차와 작업실을 두어 기능적으로, 심리적으로 분리가 되도록 하였다.

 

전면부에 상가를 두고, 후면으로 주택이 들어서는 배치를 한 후 가장 많이 고민하였던 것이 상가의 전면부 디자인이었다. 삼거리 모퉁이가 정면이라 오며 가며 눈에 계속 보이는 자리였다. 건축주와 함께 오랜 시간 많은 조형 스터디를 거쳐 선택한 것은 무덤덤하지만 힘이 있는 모습이었다. 눈에 띄면서도 동네와 어울리도록, 너무 디자인한 것 같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고 힘 있는 조형이 바라는 형상이었는데, 도예를 전공한 건축주 부부와 마치 도자기를 빚듯이 세심히 매만져 나간 결과였다. 상가와 주택은 각각의 성격에 맞는 재료를 사용하여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건물이 되도록 하였고, 건축주 부부의 성향,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과 단순하고 정연한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하였다.

 

 

<어스름한 진입, 따뜻한 마당>

단독주택을 지을 때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은 진입과 마당에 대한 것이다. 집에 들고 나갈 때 기분이 좋아지는 현관과 어느 실에서나 접하고 집 전체의 분위기를 아우르는 마당 설계는 처음 배치를 잡을 때부터 마지막으로 집이 완성될 때까지 섬세히 조율한다. 영평동 주택은 남향 마당을 두고 북쪽으로 진입하는 집인데 북쪽, 뒷면으로 진입하는 것이 심심하거나 음산하지 않도록 진입부에 제주석을 쌓아 마감하고 꽃, 나무를 풍성하게 심도록 하였다. 어스름한 북쪽 현관을 들어서면 밝고 따뜻한 남쪽으로 난 마당을 품은 식당을 마주하게 되는데, 식당과 마당은 높낮이를 최소화하고 네 짝 미닫이문을 두어 식당과 마당이 하나의 공간으로 읽히도록 계획하였다.

 

 

<주방과 챗방>

영평동 주택은 주방, 식당, 거실이 하나로 이어지는 구성을 하고 있다. 제주 전통가옥의 부엌과 챗방을 발전시켜 입식과 좌식이 혼재된 공간을 만들었다. 마당에서 편안히 식당으로 들어와 거실 마루에 걸터앉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가족들이 빈번하게 이용하는 식당과 거실이 조금 더 따뜻하고 특별한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거실은 처음에 창을 두어 남향 빛이 들어오게 계획하였으나 건축주가 어둡고 조용한 거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여 벽으로만 구성하였다. 아무래도 제주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한 작가 부부라 제주의 따뜻한 어두움을 편안하게 느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마루와 2층 마당>

주택의 1층이 어두우면서 풍성한 공간이라고 하면 2층은 밝고 따뜻한 공간이다. 자녀들의 주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면 남쪽으로 높은 마루를 만들어 햇빛과 함께 한라산을 즐길 수 있게 하였고, 자녀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2층 거실, 각각의 방을 두었다. 각각의 방은 각자의 마당을 갖도록 하여, 사생활을 존중하면서도 땅, 자연과 가

까운 생활을 할 수 있게 계획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제주의 삶을 담는 제주민의 집>

제주 이주민의 집과는 조금 다르게 영평동 주택은 제주가 고향인 부부가 그동안 살아온 제주의 삶을 담는 공간이다. 제주에서 살면서 자연스레 받아들여 진 공간, 풍토를 겪으며 직접 체감한 것들, 제주성에 대한 생각 등 건축주와 오랜 시간 교감하며 지은 집으로 가족의 솔직하고 편안한 삶이 집에 녹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다. 어느 한 부분 맘에 들지 않는 곳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축주의 이야기가 커다란 보람으로 다가왔다.

위치 : 제주시 영평동

​규모 : 지상 2층 / 388.76㎡

용도 : 단독주택, 근린생활시설

구조 : 철근콘크리트

​설계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이창규, 강정윤)

감리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이창규, 강정윤)

시공 : 건축주 직영 

조경 : 건축주 직영 

​사진 : 이상훈

기간 : 2015~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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