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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돌창고와 풍경

제주섬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삼나무(방풍림)로 둘러싸인 과수원과 돌창고 풍경은 참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적이고 보편적인 풍경 중 하나다.

최근 차를 타고 제주 중산간 마을들을 지나다보면, 과수원에 삼나무가 잘려나가는 모습과 노지 감귤 과수원이 비닐 하우스로 변하는 광경을 종종 보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미묘하게 변하고, 사라져 가고 있는 중이다. 이 변화는 제주 전체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가까운 미래에 삼나무 방풍림과 감귤 과수원, 돌창고 풍경이 사라진다면, 제주의 모습은 어떨까? 과도한 상상일까? 감귤 과수원 풍경은 지속 가능하게 유지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해본다.

<제주의 돌창고>

제주 돌창고는 제주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화산석을 이용해 쌓는다. 그리고 그 위에 목조 삼각 트러스를 얹어 슬레이트 지붕을 덮는 아주 간단한 구성이다. 이렇게 누구나 쉽게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제주 전 지역에 급속도로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창고의 바닥은 감귤 상자를 운반하기 편하게 흙바닥 혹은 시멘트 바닥으로 마감되어 있다. 문은 거센 제주 바람에 쉽게 닫히지 않는 철제 미닫이 문으로 되어 열고 닫기에 쉽고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두 개의 층을 가진 감귤 창고>

제주 돌창고는 일반적으로 단층으로 지어지는데, 감귤을 저장하고 꺼내기 쉽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이런 이유로 돌창고는 일반적으로 1층으로 지어진다. 그러나 간혹 길을 지나며 2층의 돌창고도 볼 수 있는데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에 위치한 두 개의 층을 가진 돌창고도 매우 특별한 사례다. 이런 돌창고가 생기게 된 이유는 이 건물이 위치한 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상명리 돌창고는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돌창고를 기준으로 남쪽으로 대략 2m정도 경사진 땅에 놓여있다. 이 경사지를 활용해 돌창고는 자연스럽게 두 개의 층(지하1층 지상 1층)으로 지어지게 된 것이다.

상명리 돌창고는 제주 사람들이 기존 땅과 지형을 어떻게 해석하고 집을 지었는지, 삶에 필요한 기능들을 어떻게 구성하였는지 등 그 당시 제주 도민의 건축에 대한 철학과 태도를 보여준다.

<구조>

상명리 돌창고는 지하 1층부터 지상 1층까지 제주돌을 두껍게 쌓고, 위로는 시멘트로 수평을 잡아 지붕을 얹는 방식으로 지어져 있다. 1층 바닥은 두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하층이 없는 출입구 쪽은 시멘트 바닥으로, 지하층이 있는 바닥은 나무 판재로 되어있다. 나무판재 바닥 아래는 지하 공간인데, 각재로 된 가로 장선이 돌벽에 박혀있고, 그 밑으로 세로 장선 하나가 길게 가로지르고 있으며 그 세로 장선을 원형의 삼나무 기둥이 약 1m 간격으로 지지하고 있는 형상이다. 거친 돌벽과 각재, 껍질도 벗겨내지 않은 거친 삼나무 기둥으로 만들어진 지하는 간결하고 투박한 제주 건축의 아름다운 미학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삶의 지혜로움이 반영된 건축_환기와 채광, 배수로>

제주는 우리나라의 다른 지방에 비해 매우 습하다. 감귤을 보관하기에 지하층은 서늘하지만, 습기가 많아 귤을 보관하는 장소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습기가 많으면 귤이 쉽게 썩기 때문이다.

상명리 돌창고는 습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맞통풍 되도록 남, 북으로 작은 창문과 원형 환기 구멍을 만들어 해결했다. 지하층 바닥은 기존 흙바닥에 굵은 송이로 마감하였으며 바닥에 여러 개의 배수로를 만들고 외벽에 동그란 배수 구멍을 만들어 물이 흘러나갈 수 있게 되어있다.

실측 조사를 진행하면서 지하층에 오랫동안 머물렀지만, 맞통풍이 잘되어 공기 순환이 잘 되고 있었고 습기가 많지 않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습기 문제를 해결한 지하층은 지상층보다 서늘해 감귤을 오래 저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탱크>

귤 농사를 지을 때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농약을 치기 위해서는 물을 저장하는 탱크가 필요한데, 상명리 돌창고에는 물탱크가 돌창고 외벽에 일체화되어 있다. 물탱크 한쪽 벽면에는 못을 6cm 간격으로 고정시켜 물과 농약의 용량을 체크 할 수 있다.

돌창고가 귤을 보관하는 저장소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기 위한 다양한 요소와 물탱크 기능이 추가된 상명리 돌창고는 더 매력적이다.

<감귤 과수원, 삼나무 그리고 돌창고의 풍경>

삼나무는 노지 감귤 수익을 높이고,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과수원 주위를 빙 둘러 심어졌다. 방풍림으로 삼나무가 많이 선택된 이유는 나무의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감귤은 품질이 향상되고 생산량이 늘어나게 된다. 1970~80년대는 유통 과정이 느리고, 냉장보관도 어려워 감귤을 일정 기간 저장할 수 있는 큰 창고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시기 제주도 과수원 곳곳에 수많은 감귤 창고가 지어지게 된다.

감귤 창고의 기능은 매우 단순하다. 많은 양의 귤을 썩지 않게 오래 보관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귤을 저장하고 운반하기 쉽게 단순한 일자 구성을 하며, 감귤 컨테이너를 많이 쌓을 수 있도록 층고를 높여 지었다. 환기를 위해 창을 두어야 하는데 빛이 많이 들어오면 귤을 오래 저장하기에 불리하여 고창을 작게 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단순한 일자의 평면에 통기가 되면서도 서늘한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감귤 산업의 진화 = 제주 경관(풍경)의 변화>

제주 풍경은 산업 구조에 따라 크게 변화하여 왔다. 감귤 산업의 진화 또한 제주의 경관적 관점에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일조량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과수원에 심어져 있던 삼나무 방풍림이 베어지며 우리가 흔히 보던 과수원의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귤은 당도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책정된다. 농가에서는 당도를 높이기 위해 열지어 우거진 삼나무(높이 최대 40m)를 잘라내고, 높이가 낮은 수종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감귤 유통 과정 간소화로 더 이상 감귤 창고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창고는 노후되어 방치된 곳들이 많다. 근 미래 제주 경관적 측면에서 감귤 창고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은 중요한 이슈다. 세심한 보수 및 유지 관리 매뉴얼이 필요한 지점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노지 감귤 밭이 비닐하우스로 교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조각보같이 아름답게 나뉘어있던 제주의 과수원과 밭들이 삭막한 비닐로 덮여가고 있다.

<제주다운 풍경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향>

앞서 이야기 했듯이 제주의 풍경은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주다운 풍경을 유지하고, 지속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산업과 제주 풍경이 가지고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산업 정책을 수립할 때 제주의 경관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건축적으로는 무수히 남아있는 제주 돌창고들에 대한 관찰과 기록이 필요하다. 관찰과 기록을 통해 제주 돌창고의 원형을 보존하고 유지 관리하며 활용하는 방안까지 제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다운 건축, 지역성을 드러내는 건축에서 감귤 창고가 갖고 있는 의미는 매우 크다. 단순해 보이고 다 똑같아 보이는 돌창고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을마다, 땅의 지형에 따라 다르게 지어진 돌창고가 많다. 돌창고와 그 풍경에 대한 기록들이 쌓인다면 제주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조사 및 연구 : 이창규, 강정윤, 김현준

참여 : 양다은, 김서연, 김민지

기간 : 202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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