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하가리 H 주택 haga-ri H residence 

<부부를 닮은 작지만 풍요로운 집을 계획하다>

몇 년 전 봄, 따스한 인상의 30대 젊은 부부가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재택근무를 주로 하기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자신들에게 맞는 작은 집을 짓고 싶다 하였습니다. 집이 지어질 대지는 약 700m2로 제주 중산간에 새로 생긴 넓은 도로 곁, 작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데, 가는 길이 좁아 50m2만 지을 수 있었습니다. 과수원과 밭으로 둘러싸인 땅은 정돈이 되어있지 않아 약간 어수선했지만 주변의 높은 나무 사이 사이로 빛이 들어와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넓은 땅에 지어질 작은 집이 너무 왜소해 보이지 않도록 계획을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설계를 시작하고 부부가 살고있는 집이 궁금해졌습니다. 당시 부부는 할머니가 사시던 작은 돌집을 둘의 삶에 맞게 직접 고쳐 살고 있었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며 부부는 집을 고칠 때 고생했던 에피소드, 가장 좋아하는 공간, 평소 어떻게 지내는지를 이야기해주었고, 밝고 시원하면서도 무섭지 않은 집이 되었으면 한다 부탁하였습니다.

넓은 대지에 비해 작은 집을 계획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집과 마당 그리고 경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획한 예산에 맞게 겹집의 단순한 일자형의 집을 살짝 엇갈려 배치하고, 방과 거실, 주방과 화장실 등 각각의 공간에서 만나는 마당을 계획하였습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돌담으로 새로운 올래를 만들고 나무들을 배치하여 고즈넉한 진입부를 만들었습니다.

내부는 소형주택의 답답함을 극복하고자 거실과 주방을 하나의 볼륨으로 계획하고 천장과 바닥에 높이차를 주어 표면적이 넓어지도록 설계하였습니다. 그리고 방은 아늑한 평천장으로 구성하여 거실-주방과 다른 분위기를 주어 작지만 풍요로운 공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화장실에는 욕조 옆으로 마당을 즐길 수 있는 환기창과 사계절 내내 고른 빛이 들어오는 천창을 배치하여 습기가 많은 제주 기후에 대비하였고, 곁으로 드레스 룸을 두어 작은 집이지만 수납 공간을 넉넉히 두려 하였습니다.

 

<보편적인 디테일과 유지관리를 고려한 합리적인 집짓기>

제주에서 집을 지을 때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서울에서 가능한 디테일들이 실현되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친 풍토로 인해 육지에서 사용하는 가녀린 디테일들은 몇 년만 지나면 녹이 슬거나 손상이 되고, 솜씨가 좋은 장인들이 서울에 비해 많지 않아 섬세하게 마감하기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제주의 풍토를 견디는 집을 짓기 위해 하가리 주택에는 현관 앞에 깊은 처마를 두어 비바람을 피하도록 하였고, 외벽은 회색의 롱타일로 오염에 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내부도 보편적 시공법인 몰딩과 걸레받이를 두었는데, 따뜻한 느낌이 들도록 기성 자재를 쓰지 않고 천장에 사용한 미송루버를 지정한 사이즈에 맞게 켜서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목재로 마감한 천장과 작은 목재 창을 두어 따뜻한 느낌이 들도록 설계하였습니다.

<함께 시간을 머금어가는 집>

준공 후 두 사람의 삶이 자리 잡기를 기다린 후 사진 촬영을 하러 방문하였습니다. 부부는 자신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 좋다며 그동안 지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작업이 더 많아지며 마당이 보이는 안방을 서재겸 거실로 쓰고, 거실에 침대를 두어 쓰고 있는데 이렇게 쓰는 것도 좋은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거실 일부에 다락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집이 부부와 함께 시간을 머금겠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해졌습니다.

 

 

 

 

위치 :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규모 : 지상 1층 / 98.70

용도 : 단독주택

구조 : 목구조

​설계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이창규, 강정윤)

감리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시공 : 테바건축

조경 : 향원조경

​사진 : 이상훈

기간 : 2016~2020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