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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평화공원 설계공모  jeju 4.3 peace park competition

의미없이 비워져 있던 땅, 높은 오름을 등지고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광활한 이곳에 제주 4.3 평화공원이 들어섰다. 의미를 찾지 못한 땅은 시간이 흐르고 기억이 쌓이며 고요한 추념의 공간이 되었다. 미처 완성되지 않은 계획은 끊임없이 외치던 소리가 비로소 밝은 세상에 다다르자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스산한 초지였던 이곳은 이제, 과거를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희망의 땅이다. 깊숙한 아픔을 마주하고 감싸며, 때로는 함께 기억하고 평화를 이야기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곳이다. 진실되고 충분한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면 이곳으로 내려와 산책하고 체험하며 다시금 활기찬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바란다.


우리는 이러한 이유로 기존에 계획된, 위령제단-추념광장-위령탑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공간의 축을 존중하면서도 동그스름한 얕은 오름을 지닌 내리막의 초지에는 제주의 풍경에 어우러지는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이 자리하기를 바랬다. 주어진 조건에 의해 많은 실들이 지하에 배치되었으나 그 공간이 4.3의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지 않도록 지하에서부터 나무가 심어진, 새로운 ‘빛의 동굴’을 두어 기존의 어두움이 밝고 따스함으로 환기되도록 하였다.


도시와 바다를 향해 점점 낮아지는 지형을 따르다보니 두 건물은 높이 차이를 가지며 ㄱ자로 배치되고, 그 둘의 접점에 나지막한 경사의 열린 외부 광장이 형성된다. 길 건너 평화센터부터 시작된 걸음은 빛의 통로를 지나 점점 낮아지는 담을 따라오다 마침내 이 광장에 도착한다. 추념의 공간과 일상의 공간이 적절한 거리를 가지고 공존하는 것이다. 


대지 동측의 트라우마 치유센터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4.3 기념관과 마주하며 유가족의 마음을 보듬는 건물이다. 무덤덤한 조형이 마치 커다란 상처도 담담히 이겨내는 제주인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울퉁불퉁하고 붉으스름한 속살을 드러낸 깨진 전돌은 제주의 아픔을, 발 아래로 트여진 동그란 원은 지하에 ‘따뜻한 마당’을 형성하며 평화와 통합을 상징한다. 위에서 내려다 볼 수도, 빛의 통로를 통해 바로 들어설 수도 있다. 나무가 심어진 동, 서로 열린 빛의 동굴은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동시에 습하고 침침했던 기억을 ‘기분좋은 어두움’으로 바꾸어 줄 치유의 공간이 될 것이다.


남측의 국제평화문화센터는 견고한 지하의 기단 위에 콘크리트로 새롭게 해석된 가구식 구조가 드러난 미래 공간이다. 마치 목초지의 마사를 떠올리게 하는 조형은 ‘풍경 속의 집’으로, 겸손하게 위치하면서도 하나의 지붕으로 그 존재감을 은근히 드러낸다. 1층에서 두 개로 나누어진 볼륨은 휴게마당을 가로지르는 기억의 회랑을 통해 연결되며 지하는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되어 사용된다. 급한 경사 덕분에 북쪽의 지하 공간은 도시와 바다를 향해 열리며, 수목이 가득한 남쪽 빛의 동굴은 4.3을 기억하고, 창작이 이루어지는 영감의 공간이 되어간다.


평화라는 단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들리는 요즘, 70여년 전 평화로운 하나를 갈망하던 유일한 섬, 제주. 피해를 고스란히 당한 것도, 그 피해를 알리려 끊임없이 노력한 것도 제주였다. 스스로 일구어나가는 삶. 그것은 제주민의 뿌리에 깊게 자리 잡은 삶의 태도이다. 4.3 평화 공원에 자리 할 트라우마 치유센터와 국제평화문화센터는 제주민의 삶을 담은 제주의 건축으로 스스로를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 

 

 

위치 : 제주시 봉개동 산 53-5, 53-11

​규모 : 지상 1층, 지하 1층 / 5499.73

용도 : 문화 및 집회시설, 노유자시설, 지하도

구조 : 철근  콘크리트

​설계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마인드맵 건축사사무소

기간 : 2023. 04~202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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