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면적은 약 10만㎢로 작은 편이지만, 남북으로 긴 형태로, 위도에 따른 다양한 기후가 나타난다. 예부터 사람들이 살아가는 민가는 재료, 식생활 패턴, 가족제도 등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기후나 입지와 같은 자연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육지와는 다른 건축 형태를 보이는데, 제주도 내에서도 한라산의 영향으로 남, 북의 건축이 서로 다른 특징을 지녔다. 재료의 한계, 기후의 제약, 또 이로 인한 기술적인 제한이 많은 제주이지만, 이런 단점들을 오히려 강점으로 내세워 제주스러운 제주의 건축을 이뤄나가는 건축가가 있다.
제주의 디테일을 살린 건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제주건축을 조사하며 그 속의 유효한 가치를 찾고자 하는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의 이창규, 강정윤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이창규, 강정윤 대표 인터뷰 ]
Q. 2021 젊은 건축가상에 제출하신 작품들 소개 부탁드려요.
저희는 설계작업으로는 제주 어머니집, 슬로보트, 고산집, 과수원집 소원재, 하천리 주택, 제주 미래농업육성관, 무근성 지역 올래를 활용한 정주환경 개선 전략에 관한 연구, 제주의 마을 조사 보고서_온평리, 제주 구도심 마을지도와 같은 조사와 연구작업, 그리고 산지천 풍경의 회복, 거닐다라는 제주 공공성 지도 전시작업 등을 제출했습니다.
Q. 건축설계 하실 때, 영감이 받는 곳이 있다면 주로 어디에서 받으시나요?
강정윤 건물이 지어질 장소와 동네에서, 많은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도시에서는 보통 주변과의 관계, 도시적 컨텍스트를 많이 생각하지만, 제주의 경우에는 주변의 수목과 돌들, 올래, 옆에 있는 가옥 등 처음 사이트를 방문했을 때 걸어 다니며 떠오르는 생각들에 집중하고, 처음의 그 느낌을 담아내려고 해요. 또, 도시적인 장소와 자연히 펼쳐진 사이트 등 전혀 다른 두 장소의 대비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요.
이창규 건물을 짓고자 하는 건축주에게 영감을 받습니다. 건축은 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 꿈을 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건축주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새롭게 해석합니다.
"음악에서 기본음을 뜻하는 에이루트처럼, 근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는 건축"
Q.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건축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창규 처음 제주 어머니 집을 마치고 나눈 이야기가 ‘촌스럽고 투박하더라도, 우리 것을 하자’라는 것이었어요. 선배 건축가들이 이뤄놓은 바탕에서 더 정연하게 갈고닦는 건축도 좋지만, 거칠고 서툴러도 우리만의 기반을 닦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가 건축하는 지역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려고 해요. 흔하게 접하는 마을과 가옥에서도 건축적으로 배울 부분이 많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온평리 마을 조사, 제주 구도심 올래조사, 제주 구도심 지도제작, 건축자산 연구 등을 해왔는데, 앞으로도 사라져가고 있는 제주 마을과 가옥들을 조사하면서 제주건축을 기록하고, 건축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제주도라 어렵지만, 제주도라서 풍요로운 건축"
Q. 제주도라서 가능했던 프로젝트나 제주도라서 어려움을 겪었던 프로젝트가 있나요?
강정윤 아, 제주도라 어려운 점은 매번 있었죠. 도시에서의 작업과는 다르게 주변의 자연환경을 고려하며 설계한다는 것은 건축가로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주에서 눈에 띄는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해요. 가령, 제주는 육지보다 운송비와 자재 수급이 불리하고, 시공비는 비싸지만 일하시는 분의 솜씨는 높지 않은 편이에요. 또 풍토가 거칠어서 쓰고 싶은 자재나 디테일을 구현하기 힘들죠.
또, 매해 겪는 장마와 더위, 그리고 염분이 있는 해수와 태풍, 숲이나 곶자왈 근처의 습기는 상상 그 이상이죠. 이런 상황에 맞는 디테일 혹은 시공자에 맞춰서 디테일을 그때마다 새로 풀어내야 하고, 전체적인 구조나 형태 등도 생각하며 진행해야 하니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 수밖에요.
이창규 처음 내려와서는 ‘이게 왜 안 될까‘를 고민하며 속앓이를 했다면, 이제는 그 자체를 긍정하고 일부러 투박하고 무덤덤한 제주다운 건물을 지으려 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주라서 좋은 점은 제주의 석공분들의 솜씨가 좋으셔서 돌로 마감하는 것들은 아주 멋지게 나와요. 조경도 고수인 분들이 많으셔서 건축을 더 풍요롭게 해주시죠. 처음에는 이곳의 시공 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지역마다 장, 단점들이 있어서 우리나라 건축이 다양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무엇인가요?
강정윤 크게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첫 번째로는 외관이나 그 형상이 그곳에 어울리는지 가장 먼저 생각해요. 유사 또는 대비의 방식으로 주변과 주화를 이루어 아름답기를 바라요. 내부적으로는 건축주의 이야기를 최대한 녹여내려 해 배치와 평면 구성을 섬세하게 하는 편이에요.
두 번째로는 건축주가 오랜 시간을 보내고, 그 삶이 이루어지는 내부 공간의 설계죠. 특히 길과 연속적으로 이어져 근사하게 대우받는 진입공간을 중요시해서, 건물이 들어설 장소와 건축주의 삶이 공간으로 연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유지관리에요. 처음 완공되고 사진 찍을 때가 가장 예쁜 건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아름다움이 지속되는 건물이었으면 하죠. 특히 제주에서는 육지에서 사용하는 “얇고 가녀린 디테일”은 몇 달 안에 녹이 슬거나, 손상돼서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묵직하고 투박한 디테일이지만, 그 자체가 건물과 어울리고 시간이 지나도 처음의 공간적 힘이 오랫동안 잘 유지되는 것이 저희 설계에서 중요합니다.
"조정구 소장님의 추구하는 가치나 생각이 작업에 드러나는 건축, 사진보다 실제가 더 좋고, 오랜 시간 경험할수록 좋아지는 건축"
Q. 건축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강정윤 성적에 맞춰서 가게 되었어요. 제가 철학, 역사를 좋아해 이공계에서는 건축과가 좋겠다 싶었죠. 졸업 후에 다녀온 헬싱키 공대의 우드프로그램에서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의 건축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돌아온 후 구가 도시건축에 들어가 조정구 소장님으로부터 건축가로서 자세나 태도, 우리 시대의 한국 건축에 관한 생각들을 많이 배웠어요. 그때부터 건축을 제대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창규 자연스럽게 건축과에 가게 된 것 같아요.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건축과에 가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었죠. 대학교에서 배운 것들도 정말 재미있었고, 건축 동아리에 가입해 건축 세미나, 크리틱, 공모전 등에 참여한 것도 많은 도움이 됐었죠. 대학교 졸업하고 구가 도시건축에 입사했는데, 조정구 소장님으로부터 말과 건축이 일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시간이 누적된 오래된 마을과 가옥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기록하는 자세를 배웠죠. 또 현대 한옥 작업도 진행하면서, 한국적인 건축과 공간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Q. 지금까지 설계하신 건축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이창규 제주 어머니집이요. 예산이 작아서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제주 어머니집이 저희 건축의 시작점이라 가장 기억에 남네요. 처음 제주에 내려와서 세련되고 독창적인 집을 지을 수도 있었지만, 저희가 생각한 ‘제주성’을 녹여내자는 의지와 태도를 견지하며 모든 기준을 그것으로 잡아 완성했습니다. 제주의 분위기와 느낌이 담겨있어서 그런지 아직도 많은 분이 저희 작업 중에 제주 어머니집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Q. 나에게 건축이란?
강정윤 특별히 저에게 건축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냥 물 흐르듯이 건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있죠. 저나 이 소장이나 특별히 취미가 없어서 건축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요. 또 건축할 때 가장 재미있더라고요.
이창규 저에게 건축이란 삶의 일부분이에요. 건축과 떨어진 삶을 상상한 적이 없죠. 건축은 항상 저에게 재미있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존재로, 건축 그 자체를 좋아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요.
"알바 알토의 보편적인 해법의 설계와 디테일, 어떠한 상황에서든 감탄을 자아내는 건축을 추구"
Q. 사람들에게 어떤 건축가로 불리고 싶은가요?
강정윤 이 소장이 예전에 알바 알토 건축을 보고 사랑스러운, 사랑받는 건축가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시간이 지나도 원래의 목적과 공간감을 크게 잃지 않고,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는데, 아마 사용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배려가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 건축도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창규 시대를 넘어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라고 불리는 것이 꿈입니다. 누가 설계한 건물인지 몰라도,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 건물은 사람을 배려하는 정말 따뜻한 시선을 가진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 같다’라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창규 지금은 제주와 광주, 김천 등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한국의 다양한 지역에서 건축해보고 싶고, 궁극적으로는 저희의 건축을 통해 한국 건축을 바라보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역성을 잘 담아낼 뿐만 아니라 건축주의 인생이 담겨있는 섬세한 설계를 하는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이창규 대표와 강정윤 대표의 건축활동이 더욱 기대된다.
출처 : 문화뉴스(https://www.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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